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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과학

지층의 원리를 정립한 과정

by ()!~!# 2021. 12. 19.

수백 년 전부터 식물과 동물들의 흔적이 돌에 굳어져 있는 것이 종종 발견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몇몇 지역에서는 이러한 뼈의 잔해를 용골이라 부르면서 가루로 빻아 약제에 섞어 먹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화석이 오래전에 죽은 생물체의 잔해라고 생각한 최초의 사람은 다빈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탈리아에서 발견한 화석 껍질들을 과거에 바다가 육지를 뒤덮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물들이 어떻게 수 미터 두께의 오래된 바위 층 속에 묻힐 수 있었는지는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또한 공룡과 같은 동물에 대한 온갖 추측과 논의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노아의 홍수나 각종 종말론과 관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노아의 홍수로 당시 살던 동물이 물에 익사했을 것이고, 그 위에 진흙과 돌이 쌓이고 세월이 흘러 암석이 되었을 것이라고 쉽게 정리해 버린 것입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자연계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면서 대지와 화석에 대해서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습니다. 이 결과 지질학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보통 1780년에서 1840년까지를 지질학의 황금기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최초로 사변적 지질학을 파고든 사람은 허튼입니다. 그는 여러 지역을 두루 다니며 쌓은 견문과 농업가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지구의 이론을 저술하였고, 이 책을 통해서 지질학의 여러 현상들은 현재의 우리 주변에서도 항상 일어나고 있는 자연적인 힘에 의한 산물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계곡은 강물로 인해 깎인 것이고, 평야는 강물이 흘러 내려온 진흙이 퇴적하여 차차 굳어져서 새긴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끊임없는 파괴와 창조를 뜻하는 것으로서 신에 대한 천지창조설을 거스르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지층이 형성된 방법에 대해 여러 학설들이 나왔으나, 라이엘이 지질학의 원리를 출간하면서 흡수되거나 사라졌습니다. 라이엘은 유럽의 여러 지역에 걸친 보다 광범위한 관찰을 토대로, 자연환경은 대부분 지질시대의 오랜 기간에 걸친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천천히 단계적으로 변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허튼이 처음 제기한 자연력의 작용에 관한 동일과정설을 재확립시킨 것입니다. 라이엘은 그의 책 첫머리에서부터 지질학을 성서의 주장과 떼어 놓았습니다. 그는 지구의 나이가 수백만 년은 되었고, 성서에 기록된 시간 이전에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존재했다고 전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구가 매우 오래 전에 생성되었다는 전제로부터, 화석은 태고의 시대에 살았으나, 지금은 멸종된 생물체의 유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화석이 두터운 암석층 속에서 자주 발견된다는 사실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만일 각 지층이 어느 일정한 시대의 퇴적층을 나타낸다면,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각각의 특징적인 화석은 그 시대에 살고 있던 동물의 것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화석은 각 지층마다 전혀 다른 형태의 생물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시간에 따른 생물의 변화까지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라이엘은 성서에 나온 종의 불변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논리적인 필연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각 지질시대에 모든 동식물들이 새로 창조되어 다음의 지질시대가 오면 전멸했다고 추론하는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라이엘의 책과 이론을 아주 흥미 있게 읽고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생각을 품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입니다.  다윈은 비글호에 승선해 여행을 하는 동안 지질학의 원리를 탐독하였고, 그 후 두 사람은 서로 학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라이엘은 사망하기 전까지 지질학의 원리를 계속 수정하여 열한번이나 개정판을 냈습니다. 그는 지질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이론과 개념을 정립하여 지구 발달에 대한 과학적 해석을 널리 알렸고, 이로써 층서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물 진화에 대한 학설의 기초를 제공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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