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두 눈과 커다란 뇌가 있지만 막상 눈으로 보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미약합니다. 대신 많은 것들을 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학습 능력이 굉장히 빠르다는 것입니다. 갓난아기는 눈의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체 갖추기도 전에 이미 주변을 인식하는 방법을 학습하기 시작합니다. 얼굴은 아기가 처음으로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상 중 하나입니다. 아기는 처음 보는 눈, 코, 입 모양에 먼저 이끌립니다. 그러다가 생후 7개월 정도 되면 어른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얼굴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포유동물의 지각 과정은 대단히 복잡합니다. 어린아이의 뇌는 신경 단위인 뉴런이 어른의 뇌보다 더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뉴런 사이의 불필요한 연결이 없어지고 또 불필요한 뉴런이 제거되면서 주위의 사물과 공간을 지각할 수 있도록 눈과 뇌를 연결하는 신경 회로가 뚜렷하게 형성됩니다. 이것은 가능한 한 많은 트랜지스터와 전선을 결합해 컴퓨터를 조립한 다음 불필요한 전선은 잘라내고 무용지물은 트랜지스터는 제거해 자신이 원하는 강력한 컴퓨터를 서서히 구축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주변의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고 소통하면서 뇌는 좀 더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발전해갑니다.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뇌를 자극하고, 뇌는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 더 잘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사람의 얼굴을 자주 보면 볼수록 그 사람을 더 쉽게 알아보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뇌의 특정 부분이 고도로 발전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곁눈질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각의 발달 과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뇌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뇌에 관한 한 인간의 이해 수준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뇌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많은 실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이 작아 보인다는 생각은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멀리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다면 절대 이런 생각을 할 수 없고, 주변 환경을 올바르게 지각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 지각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예는 착시입니다. 예를 들어 빈 종이에 대문자 T를 가로와 세로 길이를 똑같게 그린 다음에 뒤집어놓고 응시해봅니다. 실험에 따르면 열린 공간에 있는 사람은 수평선보다 수직선을 더 길게 인식한다고 합니다. 넓게 열린 공간을 내다볼 때는 높이로 거리를 가늠하기 때문에 세로선을 더 확대해서 지각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는 화살 착시 현상입니다. 길이가 같은 선 두 개를 나란히 그린 뒤 선 끝에 맞춰 하나는 화살촉을 앞쪽으로 향하도록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반대쪽을 향하도록 그리면 두 번째 것이 첫 번째 것보다 길어 보입니다. 이는 각진 부분을 건물 드으이 높이를 재는 척도로 삼기 때문에 발생하는 착시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둥근 문이 있는 둥그스름한 오두막에 살면서 생전 직각 모양의 건물을 본 적이 없는 남아프리카 줄루족 사람들에게는 이런 착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진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뇌에 관련 지각 능력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환경은 우리의 지각 능력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머리 오른쪽 뒷부분과 귀 바로 옆에 위치한 후두엽과 측두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인지 불능 또는 실인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두 눈이 멀쩡해도 지각을 담당하는 뇌의 두 주요 부위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처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지 불능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우선 사물의 각 부분은 인식하면서도 전체는 인식하지 못하는 형태 실인증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실인증은 우리의 지각 능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 왔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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